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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 산행의 재발견/ 월간산 11월호. …    11-05 15:40
  조회 : 2859        
 


[윤치술칼럼 32] 산행의 재발견

  • 글 사진 윤치술 한국트레킹학교장


  • 지난여름 활새머리 모양의 풀숲으로 좁아터진 산길이 갈바람에 야위어져 한길이 되었고,

    올려다 본 나목裸木들 사이사이의 깃털구름은 아다지오adagio로 하늘하늘 떠간다.

    자국걸음에도 바스락 바스락 소스라치며 도지는 갈잎의 추억은 돌아 볼 수 있으나

    만질 수 없음에 못내 아쉽다. 그 길에 바람이 일어 달랑 잎 사연들이 엽서로 날리면,

    수취인 없는 낙엽은 그리움 더미로 우부룩 쌓여 사색思索 넘치는 산행을 만나게 된다.

     

    올여름은 되게 속상했다. 여동생 부부와의 북한산 정기산행은 코로나와 질긴 장마,

    없는 집 제사 돌아오듯 잦은 태풍에 일곱 살 앞니처럼 빠졌고 매제는 아쉬워했다.

    그는 큰 수술 후 건강을 찾고자 매주 제각말에서 사모바위, 문수봉을 지나 대서문으로

    내려서는 7시간 산행의 의지를 다졌다. 그리고 만보계를 보며 궤적에 대한 대견함과

    가족애를 증명하는 ‘산행의 기쁨’을 확인하더니 급기야 1언더파 골프를 내팽개친

    산행 예찬론자가 되었다.

     

    가족산행은 자연의 품에서 고민과 기쁨을 나누며 서로를 도탑게 해주는 힘이 있다.

    어쩐 일인지 요즘 산에서 가족들이 부쩍 눈에 띈다. 부부가, 아이들이 엄마아빠랑

    서로를 챙겨 주고 다독여 주는 격려가 멋지고 뭉클하다. 이 험한 세상에

    가족만큼 힘을 주는 것이 또 있을까? 영혼 없는 잔재미의 놀이동산과 비교할 수 없는,

    거칠고 투박하지만 감동 듬뿍한 자연의 마당에서 땀으로 만들어내는 사랑의 산행은

    참 휴먼human이라 하겠다.

     

    나쁜 것은 좋은 것, 팬더믹으로 산행문화는 대전환을 맞았다.

    산악회 단체등산과 먹고 마시며 떠들어대는 일부 물색없는 사람들의 수준 낮은 행위는

    억지춘향으로나마 짐짓 조심스러워졌고, 긍정이 넘치는 학생과 젊은이들의 진취로

    산은 싱싱해졌다. 산격山格이 높아지려나보다. 이는 교육과 계몽이 바꾸지 못한

    구태舊態를 시대적 상황이 바르게 물길을 잡은 것이고 자의건 타의건 배려와 준법을

    깨치면서 ‘산행의 가치’에 눈을 뜬 것이다.

     

    역경의 오늘날 산은 더 깊고 높은 ‘위로와 사랑’을 준다.

    국립공원의 아버지, 숲의 성자로 존경받는 존 뮤어John Muir는

    “하나님의 자연 안에 세상의 소망이 담겨 있다”고 했다.

    삶의 진정한 부유가 모든 것의 풍족함이라고 한다면,

    나는 자연과 더불어 일어나는 사랑이 으뜸이라고 감히 말하겠다.

    꽃도 없고 잎도 없는 2020년 황량한 동짓달, 새삼 우리는 바위의 단단함으로

    갈맷빛 희망 흐드러지게 피어 있을 저 산 너머로의 산행을 이어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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